일자리는 귀하고 중하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그 안에서 자기만의 자리를 찾기 위해, 나아가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일자리를 원한다. 그러나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낮은 임금, 열악한 복지, 곳곳에 도사리는 해고 위험 등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고용 환경 속에서 '좋은 일자리'는 한층 더 귀하고 중하다. 이 시대의 일자리 문제란, 간단히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 책은 시장의 논리와 인간의 존엄 사이에서 '삶의 의미로서의 일'을 재정의한다.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이상헌이 다시 한국 사회와 마주 서서 오늘날 일자리 문제의 본질을 규명한다. '일하는 삶의 경제학'이라 이름 붙인 시리즈를 통해 숫자 너머를 보려, 불화 속에서 길을 찾으려 애쓰며 지금 여기에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를 해결하는 일에 집중한다.
시리즈 첫 번째 책인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는 똑떨어지게 답이 나오는 경제학적 분석을 뛰어넘어, 노동과 고용이라는 좁은 개념밖에 존재하는 넓고도 온전한 '일하는 삶'이라는 시각에서 '일'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땀과 눈물과 먼지로 번들거리는 일자리의 현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지난 30년간 국제기구, 정책 현장, 경제학 연구의 최전선에서 정책 개발과 조언을 업으로 살아온 그가 학문적 고찰과 실천적 고민을 함께 담은 일자리 입문서인 셈이다.
책은 스무살이 채 되지 않은 여성의 고단한 삶을 그려 20세기 마지막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 '로제타'로 문을 연다. 수습을 마치자마자 공장에서 해고된 로제타는 자격 요건이 되지 않아 실업 급여도 받지 못한다. 버려진 캠핑카에서 알코올 중독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는 유일한 구원인 일자리만을 기다린다. 밤마다 자장가 삼아 "내 이름은 로제타, 나는 일자리를 찾았어"라고 말하지만, 그 구원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이상헌은 이를 스크린 속 허구와 과장의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는다. 되려 한 발자국 나아가 "로제타는 어디에나 있다"고 말한다. "유럽의 작은 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로제타는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젊은 로제타도 있고, 나이든 로제타도 있다. 사무실에도, 공사장에도, 도로 위에도 논과 밭에도 그리고 집 안에도 있다. 로제타는 일자리에서 밀려난 모든 사람을 부르는 보통 명사다."
이상헌은 노동시장이 손톱깎이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며, 말끔한 시장 논리만으로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자동화와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며 어제의 새로운 기술이 오늘의 지루한 기술이 되는 지금, 과거와 같은 안정적인 일자리 개념은 더는 굳건하지 못하다. 다양한 고용 형태의 확산으로 노동의 개념 또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과서적 경제학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꿈틀거리는 일자리 정치경제학을 고민하고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지 묻는 이 책은 반갑고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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